수호천사가 길잡이가 되기까지 : 웹게임 혼자 만들기(18)
새로 온 사람이 첫날을 넘기게 하고 싶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옆에 먼저 와 본 사람이 하나 붙어 있으면 좋겠다고. 흔히 말하는 멘토, 멘티 제도다.
처음 적어 둔 이름은 수호천사였다. 가칭이었지만 머릿속 그림은 꽤 구체적이었다. 먼저 온 사람이 홍보 링크를 뿌리고, 그 링크로 가입한 사람은 자동으로 짝이 된다. 링크 없이 온 사람은 메뉴에서 멘토 닉네임을 적어 등록한다. 새 사람이 전적을 쌓거나 첫 보스를 잡을 때마다 둘 다 보상을 받는다. 짝이 맺어지면 둘만 쓰는 대화방이 바로 생긴다.
써 놓고 보니 좀 설렜다. 게임 안에 작은 관계가 하나 생기는 거니까.
수호천사라는 이름이 걸린 곳
근데 이름부터 걸렸다.
TEXT WAR 에는 계열이 여섯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수호다. 수호 계열 플레이어가 멘토가 되면 수호 수호천사가 된다. 소리 내서 읽어 보면 좀 웃긴다.
게시판도 문제였다. 이미 수호천사라는 이름이 붙은 질문 게시판이 있었다. 제도 이름까지 똑같으면 안내문이 어느 쪽 얘기인지 섞인다.
그리고 천사라는 말이 이 세계에서 혼자 튀었다. 포인트 이름도 수호천사 포인트라 길었고.
후보를 늘어놓고 비교했다
그래서 후보를 다섯 갈래쯤 늘어놓았다. 기준은 넷이었다. 짧고 입에 붙을 것, 세계관에 붙을 것, 이미 있는 이름이랑 안 겹칠 것, 위아래보다 같이 걷는 느낌일 것.
동행은 느낌은 좋았는데 멘토랑 멘티를 앞선 동행, 새 동행으로 불러야 했다. 문장 안에 넣으면 어색하다. 계승은 세계관이랑 딱 맞았지만 비슷한 말이 이미 칭호랑 이야기 곳곳에 쓰이고 있어서 헷갈렸다. 게다가 무거웠다. 선배 후배는 익숙한 대신 위아래가 먼저 보였다. 스승 제자는 사제 계열이랑 겹쳤고, 사수 부사수는 사수 계열이랑 부딪혔다. 군대 냄새도 나고.
남은 게 길잡이였다.
길잡이, 길동무, 등불
멘토는 길잡이, 멘티는 길동무. 포인트는 등불. 뜻이 바로 보이는 게 좋았다. 세계관 안에도 등불이랑 이어지는 이야기가 이미 있어서 자리가 금방 생겼다.
길잡이 아이콘도 등불로 정했다. 심지에서 시작해 초롱, 등롱, 횃불, 봉화로 커진다. 불이 커지는 모양이라 단계가 바로 읽힌다. 게시판에서 이름 옆에 작은 불이 붙는 거다.
걸리는 게 아예 없진 않았다. 몬스터 이름 몇 개에 길잡이라는 낱말이 들어 있고, 등불은 낚시터랑 물고기 이름에도 있다. 그래도 메뉴나 재화랑 헷갈릴 일은 적다고 봤다.
게시판 이름도 제도 이름에 맞춰 바꾸기로 했다. 안내문은 원래 1:1 대화를 요청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짝끼리 쓰는 대화방이 생기는데 그 문장이 남아 있으면 말이 안 맞는다. 개인 연락처나 외부 메신저는 주고받지 말고, 대화는 게임 안 1:1 채팅을 써 달라는 쪽으로 고치기로 했다.

막아 둔 물약이 걸렸다
보상에서도 걸리는 게 있었다.
처음 그림에서 길동무 보상은 골드, 스태미너 물약, 상점 장비였다. 근데 스태미너 물약은 그때 판매도 사용도 막아 둔 물건이었다. 오픈베타 범위에서도 빼 둔 물건. 멘토 제도 하나 때문에 그 문을 통째로 열 수는 없었다.
게다가 원래 있던 물약은 상점에 되팔 수 있었다. 그걸 그대로 주면 받은 물약이 결국 골드로 바뀐다. 보상으로 준 게 다른 길로 새는 거다.
그래서 그때는 이 제도 보상에만 좁게 예외를 두기로 했다. 길동무한테 주는 물약은 따로 정했다. 계정에 묶여 있고, 거래도 안 되고, 상점에 팔 수도 없는 물약. 들고 있을 수 있는 상한은 손대지 않는다. 물약을 파는 것도, 다른 데서 나눠 주는 것도 막아 둔 채였다.
길잡이는 꾸미는 것만 받는다
길잡이 쪽 보상은 반대로 갔다. 길잡이가 받는 건 게시판 아이콘이랑 프로필 테두리 같은 꾸미는 것뿐으로 정했다. 전투력이나 골드로 바꾸는 길은 두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부계정을 만들어서 자기가 자기 길잡이를 하려는 사람은 생길 거다. 그래서 부계정으로 챙길 수 있는 이득을 꾸미는 것 안에 묶어 두기로 했다. 길잡이가 길동무한테 골드나 물건을 넘겨주는 기능도 두지 않기로 했다.
처음 그림에 있던 아바타 가게는 아직 없었다. 그래서 등불로 바꿀 수 있는 건 길잡이 전용 테두리 세 개로 시작하기로 했다. 심지 틀, 등롱 틀, 봉화 틀.
등불 숫자도 둘로 나눴다. 쓰면 줄어드는 보유 등불이랑, 쓰든 말든 평생 쌓이기만 하는 누적 등불. 아이콘 단계는 처음부터 적어 둔 대로 누적으로 매긴다. 테두리 하나 바꿨다고 불이 작아지면 이상하니까.
끊는 것도 정해 둬야 했다
관계가 생기면 끝도 생긴다. 길동무는 언제든 길잡이를 끊을 수 있다. 대신 스스로 끊으면 새 길잡이는 못 정한다. 이미 받은 보상은 그대로고, 둘 다 앞으로 받을 몫만 없어진다. 길잡이 쪽 사정으로 끝난 거면 길동무가 한 번 더 고를 수 있게 정했다.
끊었다는 알림에는 누가 끊었는지 적지 않기로 했다. 인연이 끝났다는 한 줄만. 그거 하나로 마음 상할 일이 꽤 줄 것 같았다.
링크 대신 닉네임 하나로
한참 뒤에 하나를 더 바꾸기로 했다. 처음엔 홍보 링크로 가입하면 자동으로 짝이 되게 하려 했는데, 링크랑 코드를 없애고 길잡이 닉네임을 적는 칸 하나로 줄이기로 했다. 가입할 때 적어도 되고, 가입하고 나서 정해진 기간 안에 적어도 된다. 처음 그림의 두 갈래 중 하나만 남은 셈이다.
수호천사였을 때는 착한 누군가가 위에서 지켜 주는 그림이었다. 길잡이가 되고 나니 불을 들고 조금 앞에서 걷는 사람이 됐다.
다음엔 60초짜리 트레일러를 만든 얘기를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