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알아서, 준비는 내가 : 웹게임 혼자 만들기(3)

2026.10.09 · 밥

싸움을 어떻게 할지는 처음부터 정해놨었다. 자동전투다.

단톡방에서 계속 나오던 얘기 중에 먼저 때리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은 별로고, 세팅 맞춰서 대응하는 맛이 있어야 된다는게 있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붙잡고 있어야 되는 게임은 안 만든다고 했으니까 손으로 하나하나 누르는 전투는 처음부터 빼기로 했다.

싸움은 알아서, 준비는 내가

그래서 정한 규칙이 이렇다.

장비, 어빌리티, 스킬을 미리 짜두면 싸움은 알아서 한다.

스킬은 10칸에 순서대로 넣어둔다. 내 차례가 오면 그때 상황을 보고 쓸 수 있는 스킬을 앞에서부터 고른다. MP가 모자라면 다음 칸으로 넘어간다.

한 판은 최대 30턴. 한 번 행동할 때 최대 8번까지 때린다.

둘 사이에 거리가 있다. -100부터 +100까지 한 줄 위에 서고, 기본공격은 무기 사거리 안에서만 된다. 너무 가까우면 활 쏘는 애가 불리하고, 너무 멀면 칼 든 애가 불리하다.

거리는 꼭 넣고 싶었다. 옛날 게임에서 거리가 없어지니까 직업끼리 차이가 없어지고 결국 한 방 센 직업만 남았다는 얘기를 단톡방에서 몇 번이나 봤기 때문이다. 거리가 있어야 궁수가 궁수다워진다.

근데 이걸 정하는 거랑 돌아가게 만드는 건 완전 다른 얘기였다. 처음엔 숫자 한 줄만 바꿔도 전투가 이상하게 끝났다.

10번 사냥 버튼

전투가 대충 돌아가기 시작하고 나서 검사실에 10회 사냥 버튼을 달았다. 한 번 누르면 열 판을 이어서 싸운다.

처음 눌렀을때 진짜 신났다. 결과 기록에 승리가 줄줄이 쌓이는데 뭔가 게임 같았다.

10회 사냥. 승리가 줄줄이 쌓였다.
10회 사냥. 승리가 줄줄이 쌓였다.

근데 위로 올려보니까 HP가 1, MP가 0이었다.

열 판 다 이기고 HP 1.
열 판 다 이기고 HP 1.

당연한 얘기였다. 한 판 싸울 때마다 HP가 조금씩 깎이는데 회복이 없으니까 열 판이면 바닥난다. 화면 아래에 자동 반복이나 자동 회복은 없다고 써놓은 것도 나였다ㅋㅋ

이대로면 10번 누르고 여관 가고, 10번 누르고 여관 가고를 반복해야 된다. 1화에서 노가다는 줄인다고 해놓고 내가 노가다를 만들고 있었다.

자동 물약

그래서 물약칸을 만들었다. 전투가 끝났을때 살아있으면 물약칸에서 알아서 회복한다. 물약은 내구력이 있어서 1 쓰면 1 회복되고, 남은게 적은 물약부터 쓴다. 다 쓰면 소진.

전투 끝나고 자동으로 HP +15, MP +5. 물약이 모자라서 부분 회복.
전투 끝나고 자동으로 HP +15, MP +5. 물약이 모자라서 부분 회복.

물약을 일부러 조금만 넣고 열 판을 돌려봤다. 첫 판에서 물약이 다 떨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HP가 38, 31, 24, 17, 10, 3 이렇게 내려가다가 1에서 멈췄다.

물약 소진. 그 다음은 그냥 버티기.
물약 소진. 그 다음은 그냥 버티기.

이 화면 보면서 좀 웃겼다. 숫자가 이렇게 정직하게 줄어드는걸 보니까 이제야 내가 만든게 진짜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물약이 언제 떨어지는지, 몇 판까지 버티는지가 다 기록에 남는다. 이게 나중에 밸런스 잡을때 엄청 중요해졌다.

근데 아직 게임은 아니다

싸우고, 회복하고, 기록 남기는건 됐다. 근데 화면은 여전히 검사실이었다. 캐릭터도 없고 마을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토큰 넣고 연결 누르는 화면을 보면서 이걸 누가 하겠나 싶었다.

그리고 이 무렵에 좀 큰 결정을 하나 했다. 지금까지 만든걸 거의 다 버리기로 한 거다.

다음엔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든 얘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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