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서라는 걸 처음 써봤다 : 웹게임 혼자 만들기(2)

2026.10.09 · 밥

기획서라는 걸 처음 써봤다. 메모 몇 줄을 조금 길게 늘리면 되는 줄 알았다.

처음엔 신났다. 직업은 여섯 계열, 그 안에 전문화가 열여덟 개, 전직은 1차부터 8차까지, 스탯은 여섯 개. 머릿속에 있던걸 막 적어 내려가니까 벌써 게임 하나 다 만든 기분이었다.

근데 숫자를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상해졌다.

숫자 하나 바꿨을 뿐인데

제일 기억나는건 스태미너다. 처음엔 최대 1,000에 28.8초마다 1씩 차서 8시간이면 꽉 차게 해놨었다. 근데 8시간이면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이미 넘쳐서 버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치를 2,000으로 올리고 30초에 1씩 차게 바꿨다. 꽉 차는데 16시간 40분.

여기까진 간단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사냥 한 판에 스태미너를 얼마나 쓰는지, 한 시간에 수련점수를 얼마나 버는지, 연금술 한 칸 올리는데 며칠이 걸리는지. 스태미너 하나 바꿨는데 이게 다 같이 움직였다. 하나 고치면 다른데가 틀어지고, 그거 고치면 또 다른데가 틀어지고.

계산해보고 나서야 알았는데, 최대치를 두 배로 늘렸는데도 하루에 차는 양은 3,000에서 2,880으로 오히려 4% 줄어 있었다. 이런건 표로 안 뽑아보면 절대 모른다.

숫자가 맞는지 보려고 검사용 화면도 하나 띄워놨었다. 이름도 그냥 사냥 검사실. HP, MP, 스태미너 세 칸이랑 사냥 버튼 두 개가 전부였다. 숫자 하나 고칠 때마다 여기서 사냥 버튼을 눌러보고 스태미너가 제대로 줄어드는지 봤다.

(처음 띄운 사냥 검사실. 게임이라기보단 계산기에 가까웠다.)
(처음 띄운 사냥 검사실. 게임이라기보단 계산기에 가까웠다.)

노력한 만큼은 남게

단톡방에서 제일 많이 나온 불만 중 하나가 열심히 했는데 남는게 없다는 거였다. 몇 달을 해도 성장이 안 되고, 강화하다 터지고.

그래서 연금술은 확률을 아예 뺐다. 전직을 높이 할수록 스탯 한계가 401에서 801까지 열리고, 수련점수를 모아서 한계를 한 칸씩 올린다. 성공 확률 100%, 실패 없음, 파괴 없음. 모은 만큼 정확히 오른다.

대신 비용을 정하는게 어려웠다. 5차 구간은 500, 6차 850, 7차 1,450, 8차 2,400. 이 숫자 하나 정하는데 스태미너, 사냥 시간, 수련점수 버는 속도를 전부 다시 맞춰봐야 했다.

문서를 열네 번 다시 맞췄다

숫자가 바뀔 때마다 다른 문서들이 옛날 숫자를 들고 있었다. 어떤 문서엔 1,000이고 어떤 문서엔 2,000이고. 그래서 바뀔 때마다 전체 문서를 다시 맞췄는데, 세어보니 그걸 열네 번 했다.

그러다 꼬리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확정인지, 시험해보려고 넣은 값인지, 보류인지. 특히 시험값이 무서웠다. 검사실 물약칸에는 물약 하나에 100,000짜리 검사값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런 숫자가 일단 돌려보려고 넣은건지 원래 그런건지 나중엔 나도 헷갈렸다. 코드에 들어가 있다고 확정이 아니다. 이걸 그때 처음 배웠다.

근데 이게 재밌을까

밤새 숫자 표만 보고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표가 다 맞으면 게임이 재밌어지나? 숫자는 맞는데 재미없는 게임이면 어떡하지.

검사실에서 처음 돌린 전투는 1라운드 만에 끝났다. 검사자 1이 스킬 한 번 쓰고, 검사자 2가 죽었다. 끝. 숫자는 다 맞게 나왔는데 이걸 싸움이라고 하긴 좀 그랬다.

첫 전투 기록. 일곱 줄이 전부였다.
첫 전투 기록. 일곱 줄이 전부였다.

그래서 이제 진짜 싸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다음엔 전투 얘기를 하려고 한다. 싸움은 알아서 하고 준비는 내가 하는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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