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버리고 처음부터 : 웹게임 혼자 만들기(4)

2026.10.09 · 밥

3화 끝에 다 버리기로 했다고 썼는데, 사실 그 결정까지 꽤 오래 걸렸다.

원래 계획

원래는 바로 서버를 빌릴 생각이 없었다. 먼저 몇 명한테만 보여주는 작은 미리보기를 만들어서 의견을 받고, 그 다음에 진짜 서버로 가려고 했다.

미리보기는 이렇게 생겼었다. 진짜 전투도 보상도 없고, 정해진 예시 데이터로 스킬 10칸 순서를 바꿔보고, 전투 한 번 재생해보고, 의견 남기고 끝나는 화면이었다.

버린 미리보기. 합성 데이터라 실제 전투도 보상도 없었다.
버린 미리보기. 합성 데이터라 실제 전투도 보상도 없었다.

문제는 이걸 올리려고 맞춰야 되는게 너무 많았다는 거다. 로그인은 어떻게 하는지, 캐릭터는 처음에 어떤 상태로 만들어지는지, 스태미너는 어디에 적어두는지, 시작 장비는 뭘 주는지. 이런걸 하나하나 문서로 정하고 또 고쳤다. 그 무렵에 만든 폴더만 서른 개가 넘는다. 이름 뒤에 v0_1, v0_2, v0_3, v0_4가 줄줄이 붙어 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맞추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다 맞추면 뭐가 남지? 결국 진짜 게임은 또 따로 만들어야 되는데.

지금까지 만든게 사실은

그래서 지금까지 만든걸 다시 봤다. 3화에서 신나게 돌리던 사냥은 내 컴퓨터에서만 도는 작은 DB에 저장되고 있었고, 보상은 시험용 보상이었고, 적도 시험용이었다. 실제 사람이 들어와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고치면서 쓰는 거랑 새로 짓는 거 중에 고민을 좀 했는데, 고치는 쪽이 끝이 안 보였다. 그래서 중간 단계인 미리보기는 건너뛰고 바로 진짜 서버에 올릴 새 게임을 처음부터 만들기로 했다.

버리는게 아까웠다. 폴더 하나하나에 밤새운 시간이 들어 있었으니까. 근데 지금 안 버리면 나중에 더 많이 버려야 될 것 같았다.

남긴 건 전투 하나

다 버렸다고 했지만 하나는 들고 왔다. 3화에서 고생한 전투 엔진이다. 이건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 쓰기로 했다.

나머지는 전부 새로 지었다. 구조는 1화에서 정한대로 최대한 단순하게 했다. 브라우저, 서버 하나, DB 하나. 서버를 여러 개로 쪼개는건 진짜 필요해질 때 하기로 했다.

이 무렵에 쓰던 작업 도구도 바꿨는데, 그 바람에 그동안 쌓아둔 대화랑 메모가 하나도 안 넘어왔다. 그때부터 생긴 습관이 인계 문서다. 일 하나 끝날 때마다 지금 어디까지 했고 다음에 뭘 할지 적어둔다. 지금은 이게 없으면 일을 못 한다.

새 게임의 첫 화면

새로 지은 게임에 처음 들어갔을 때 화면이다.

처음으로 생긴 로그인 화면. 형광 녹색이다.
처음으로 생긴 로그인 화면. 형광 녹색이다.

가입은 세 단계다. 계정 만들고, 비밀번호 잃어버렸을 때 쓸 복구 코드 한 번 보여주고, 캐릭터 만들기. 캐릭터는 계정당 하나. 직업 여섯 계열 중에 고르고 성별이랑 속성을 고른다.

캐릭터 만들기. 처음으로 진짜 캐릭터가 생겼다.
캐릭터 만들기. 처음으로 진짜 캐릭터가 생겼다.

캐릭터를 만들고 홈에 들어갔을 때 좀 울컥했다. 별거 없는 화면인데 스태미너가 2,000/2,000으로 꽉 차 있고, 세계에 점령할 수 있는 도시가 26곳 있다고 써 있고, 랭킹 1위에 내 캐릭터 이름이 있었다. 혼자 만든 게임이니까 당연히 1등이지만ㅋㅋ

첫 홈. 랭킹 1위는 당연히 나.
첫 홈. 랭킹 1위는 당연히 나.

그리고 첫 사냥을 나갔다. 졌다.

첫 사냥. 8턴 만에 쓰러졌다. 그림이 아직 없어서 얼굴 자리에 이름 첫 글자가 들어가 있다.
첫 사냥. 8턴 만에 쓰러졌다. 그림이 아직 없어서 얼굴 자리에 이름 첫 글자가 들어가 있다.

8턴 만에 쓰러져서 HP 1로 돌아왔다. 아바타 그림도 아직 연결이 안 돼서 내 얼굴 자리에는 '새', 상대 얼굴 자리에는 '연' 한 글자가 들어가 있었다. 그래도 이건 진짜 서버에서 진짜 DB에 저장되는 진짜 전투였다. 져도 기분이 좋았다.

다음엔 이 게임이 돌아갈 세계를 만든 얘기를 하려고 한다. 도시 서른여섯 개를 그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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