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스라는 늪 : 웹게임 혼자 만들기(11)

2026.10.10 · 밥

직업이 여섯 개다. 전사, 수호, 사수, 마도, 사제, 척후. 처음엔 다 비슷하게 세게만 만들면 되는 줄 알았다.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몰랐다.

캐릭터 만들기. 여섯 계열 중에 하나를 고른다.
캐릭터 만들기. 여섯 계열 중에 하나를 고른다.

사람이 적으면 기록도 없다

밸런스를 맞추려면 실제로 누가 얼마나 이기고 지는지 봐야 한다. 근데 시험하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기록을 뽑아 봤는데 칸마다 한두 명이라 "이 직업이 세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이 잘하면 그 직업이 센 걸로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직접 싸움을 돌려 보기로 했다.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사냥도 시키고, 서로 붙여도 보고, 길드를 만들어서 보스도 잡게 했다. 몇백 판, 몇천 판씩.

보스가 하루를 못 버텼다

길드보스는 길드원들이 며칠에 걸쳐 같이 잡으라고 만든 보스다. 일주일 동안 길드 서른 명이 매일 덤비는 걸 돌려 봤다. 결과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며칠은커녕 하루도 안 돼서 잡혔다.

범인은 척후였다. 척후한테는 독을 거는 기술이 있는데, 독 피해가 상대 최대 HP에 비례한다. 보통 적한테는 괜찮았다. 근데 보스는 HP가 엄청 크다. HP가 크니까 독 피해도 같이 엄청 커졌다. 길드 전체가 낸 피해의 대부분을 척후 혼자 내고 있었다.

처음 설계할 때 보스한테 예외를 안 둔 게 문제였다. 고칠 때 제일 신경 쓴 건 다른 데를 건드리지 않는 거. 독 확률도, 지속 시간도 그대로 두고, 길드보스한테만 독 피해를 셀 때 쓰는 기준을 따로 잡았다. 그리고 사냥이나 대전 같은 다른 싸움은 고치기 전이랑 결과가 글자 하나까지 똑같은지 확인했다.

다시 돌려 보니 보스는 며칠을 버텼고, 척후 몫도 길드원 중 하나 정도로 내려왔다.

대전에서는 왕이 두 번 바뀌었다

대전, 그러니까 사람끼리 붙는 싸움은 또 다른 문제였다.

스킬을 어떻게 배치할지 추천해 주는 '추천세팅'을 만들었는데, 이걸 대전에도 쓰게 하자 마도가 크게 앞서 나갔다. 추천세팅이 보호막이나 뒤로 빠지는 기술을 빼고 공격 기술로 칸을 꽉 채웠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호는 상대만 세지니까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른쪽 위 '추천세팅'. 편하라고 만든 단추가 대전의 판을 바꿨다.
오른쪽 위 '추천세팅'. 편하라고 만든 단추가 대전의 판을 바꿨다.

대전용 보정을 다시 맞췄다. 같은 조합을 자리를 바꿔 가며 여러 번씩 붙여서, 운이 아니라 실력 차이가 남는지 봤다. 마도는 내려왔다.

며칠 뒤에 대전에만 붙어 있던 보정을 걷어내고 다시 재 봤다. 이번엔 척후가 모든 상대를 이기더라. 단검이 빠르고 민첩이 오르면서, 같은 시간에 척후만 훨씬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단검의 공격 속도와 보조 공격력을 낮췄다.

깎으면 키운 사람이 운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늪.

숫자를 깎는 건 쉽다. 한 줄 고치면 된다. 근데 그 직업을 골라서 며칠 동안 키운 사람이 있다. 어제까지 이기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지면 그 사람한테는 내가 고친 게 아니라 뺏은 거다. 그래서 깎을 때마다 계속 같은 질문을 했다. 이걸 깎으면 누가 손해를 보나.

그래서 정한 것들이 있다.

먼저 대전 숫자를 바꿔도 사냥이랑 보스 결과는 그대로 두게 따로 떼어 놓았다. 대전 때문에 사냥하는 사람이 손해 보지 않게. 대전에서 척후를 낮춘 만큼, 낮은 차수 척후는 사냥이랑 보스에서 너무 약해지지 않게 따로 보정을 붙였다.

이미 손에 넣은 장비의 수치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공들여 올린 장비가 하루아침에 약해지는 건 너무 억울하니까. 그리고 바뀌는 건 숨기지 않고 패치노트에 적는다. 이미 가진 무기에도 바로 적용된다는 것까지.

깎는 대신 다른 쪽을 올려 주거나, 깎더라도 키운 사람이 덜 아픈 쪽을 고르려고 했다. 완벽한 방법은 아직 못 찾았다.

아직 늪 한가운데

솔직히 밸런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다음 조정을 준비하고 있다. 보스를 숫자로 누르는 대신 보스마다 다른 공략을 생각하게 만드는 쪽으로 가 보려고 한다.

그래도 하나는 배웠다. 밸런스는 숫자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이 억울하지 않게 하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오래 걸린다.

다음엔 새로고침만 하면 멈추던 홈 화면 얘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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