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의 무게 : 웹게임 혼자 만들기(8)
글자로 하는 게임이라고 해놓고 그림 얘기를 하려니 좀 웃기다. 근데 4화 첫 사냥에서 내 얼굴 자리에 '새' 한 글자가 들어가 있던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글자로 싸우는 건 좋은데, 내가 키운 캐릭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고 싶었다.
장비가 몇 개냐면
그래서 장비 그림부터 그리기로 했다. 그리고 세어보고 좀 놀랐다. 도시마다, 속성마다, 등급마다, 부위마다 장비가 있으니까 장비 종류만 2,666개였다.
이걸 다 따로 그릴 순 없었다. 그래서 나눴다. 일반이랑 고급 등급은 종류별 대표 그림 하나를 같이 쓰고, 희귀랑 영웅 등급은 도시마다 따로 그린다. 좋은 장비일수록 생김새가 달라야 얻었을 때 기분이 나니까.
그렇게 줄였는데도 장비 그림만 천오백 장이 넘었다.

64픽셀에서도 알아봐야 된다
그림을 받기 시작하고 나서 생긴 문제가 있다. 큰 화면에서 보면 다 다르게 생겼는데, 인벤토리에서 작게 보면 다 똑같아 보였다. 칼은 칼이고 갑옷은 갑옷이었다.
그래서 규칙을 두 개 정했다.
- 속성마다 색을 정해둔다. 화염은 주황이랑 검댕, 냉기는 은백이랑 하늘색, 바람은 초록이랑 금빛, 강철은 회색 쇠, 대지는 황토. 색만 봐도 어느 속성인지 알게.
- 이름이 다른 장비는 생김새도 최소 두 군데 이상 다르게. 그리고 꼭 64픽셀로 줄여서 확인한다. 줄였을 때 구분이 안 되면 다시 그린다.
이 64픽셀 검사에서 진짜 많이 떨어졌다. 한 장씩 줄여보고, 옆에 비슷한 거랑 나란히 놓고 보고, 안 되면 다시. 이게 그림 작업의 대부분이었다.

입혀보니까 각도가 이상했다
장비 아이콘 다음은 캐릭터한테 입히는 거였다. 아바타 위에 투구, 갑옷, 신발, 무기를 층층이 겹쳐서 입힌다. 몸에 입는 그림 층이 천이백 장이 넘는다.


처음 입혀봤을 때 문제는 무기였다. 아이콘용 그림은 무기가 똑바로 서 있는데, 그걸 그대로 손에 쥐어주니까 막대기를 꼿꼿이 세워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도 안 멋있었다.
그래서 쥐는 각도를 정했다. 창, 지팡이, 폴암은 70도. 검, 망치, 도끼, 성물, 활은 65도. 단검이나 완드처럼 짧은 건 그대로. 일자로 세운 건 무조건 다시. 손에 드는 그림 557장 중에 290장이 이 각도 때문에 다시 만든 거다.
5도 차이가 뭐 그렇게 크냐고 할 수 있는데, 나란히 놓고 보면 진짜 다르다. 65도로 기울이니까 그제야 캐릭터가 칼을 '들고' 있었다.
그림이 멈춘 밤
그림 작업이 한창일 때 한번 완전히 멈춘 적이 있다. 그림 뽑는 도구에 주간 한도가 있었는데 그걸 다 써버렸다. 대기열에 그림 수백 장이 쌓여 있는데 다음 주까지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한 게 아끼는 법을 연구하는 거였다. 요청서를 짧고 정확하게 다시 쓰고, 참고 그림 수를 줄이고, 한 번에 뽑는 양을 정하고. 그렇게 해서 한 장 뽑는데 드는 양을 거의 열 분의 일로 줄였다. 한도 때문에 억지로 배운 건데 덕분에 요청서 쓰는 실력이 늘었다.
아직 몬스터는

솔직히 말하면 몬스터 그림은 아직 한참 남았다. 지금 그림이 있는 몬스터는 첫 사냥터 몇 마리뿐이고, 나머지는 아직 글자로 나온다. 몬스터는 장비랑 다르게 옛날 도트 게임 느낌으로 가기로 했는데, 이것도 하나씩 채워 나가는 중이다.
그래도 4화의 '새' 한 글자에서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좀 뿌듯하다. 이제 내 캐릭터는 칼을 65도로 든다.
다음엔 드디어 서버를 빌려서 게임을 세상에 처음 연 날 얘기를 하려고 한다.